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대부분은 이 주장에 수긍할 것이다. 사람마다 필요한 사회적 관계의 범위와 깊이에 대한 기준은 다를지라도 사회적 관계 없이는 삶을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현재 내 삶은 내가 필요로 하는 사회적 관계의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지 못하고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나는 지금 몹시 외롭다.
유치원을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외향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 동문회에서 스스럼없이 무대에 올라가 남들 앞에서 게다리 춤을 추고 상품을 받아오는가 하면 유치원 운동회에선 응원단장을 맡아 목이 쉬도록 앞에서 응원했던 기억도 있다. 초등학교를 새로운 동네로 이사 오면서 1학년 때는 친구들을 사귐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내 2학년으로 올라가며 새로 마음에 맞는 친구들도 사귀고 다시 반의 인싸가 되는 것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내가 그 당시 생각하는 인싸의 기준은 단순했다. 반 내에서의 영향력. 예를 들어 축구 할 때 원하는 포지션을 뛸 수 있다거나, 토론할 때 다수의 의견을 주도한다거나. 혹은 뭔가 다 같이 놀러 가거나 먹으러 갈 때 항상 내 의사를 물어보는지. 이것들은 내 존재의 중요도를 판단하는 일종의 간접적 증거들이었다.
3학년에 올라가서는 쉽지 않았다. 살이 쪘고, 눈이 나빠져 안경을 끼기 시작했으며 축구 실력이나 여타 운동 실력은 중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모름지기 운동을 잘하는 친구가 반의 중심이었다. 그렇지 못하다면 잘생기기거나 웃기기라도 해야 했다. 그래도 이 때 내 인생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만난 건 행운이었다. 매 해 반이 바뀔 때마다 마음에 맞는 친구를 만날 때도 있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었다. 어느 하나 특출난 것이 없는 내가 반의 중심에 서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고 내 인싸력은 점점 줄었던 것 같다. 본디 아싸여서 본인만의 길을 개척해 가는 용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보니 변두리로 밀려나는 내 위치는 불안감으로 찾아왔고 인싸 그룹에 어떻게든 끼어보고자 하는 집착은 늘어만 갔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 동네는 대부분이 같은 중학교로 진학하기에 교복을 입는다는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어느 정도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수다 떨고 점심시간이면 다 같이 나가서 축구하거나 농구하고. 왕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딱히 깊은 관계를 맺는 친구들도 없는. 집에 돌아와서는 TV를 보거나 숙제,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고. 오죽하면 중학교 선생님이었던 어머니가 내가 왕따가 아닐까 담임 선생님께 물어보기까지 했을까. 공부는 남들보다 좀 더 잘했었고 덕분에 그걸로 많은 칭찬과 성취감을 얻었다. 아마 부족한 교우관계의 공백을 이걸로 채우지 않았었나 싶다. 딱 적당히 모나지 않는 학생 그게 나의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기숙사라는 특수한 환경이 친구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다. 아마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했다면 중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그나마 24시간 살을 부대끼며 지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보니 적당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다툼도 있고 마음 상하는 일도 있지만 그리하여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지금 내게 친한 친구들을 읊어보라고 할 때 대부분이 고등학교 친구들인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대학교 시절은 고등학교만큼 혹은 그보다 더 가깝게 지냈다. 미국이라는 타지에 나와 생활하는 어려움, 학업 스트레스 등을 같이 공유하노라면 자연스레 더 끈끈해질 수밖에 없었다. 다들 외로웠고 서로를 위로해 주는 것만이 견뎌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시 이 시절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극구 사양하겠지만 그 많은 고통보다도 더 큰 평생의 동반자를 얻었으니 이 시절만큼은 애증이라고 해두자.
이렇게 구구절절이 과거를 읊어보니 나의 사회적 관계들의 부침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서 즐거운 한 해를 보낸 적도 있고 그렇지 못해 외로움으로 보낸 해도 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내일 학교에 가면 어떤 일이 있을까’라는 기대감을 안고 잠자리에 들던 날들이었다.
내가 원하는 관계란 다음과 같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는 사람들. 굳이 인싸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어떤 일들이 함께 할 때 즐거운 사람들. 같이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사람들.
나보다 적극적인 누군가, 더 재밌고 웃긴 누군가가 함께할때
이는 같이 보낸 시간들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 수록 더 진중해질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러한 관계들을 만들어가기란 더욱 더 어려워졌다. 그래도 이게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임을 잊지 않고 계속 상기하고 추구해 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