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우가 태어나고 육체적으로 힘들어서 그런 건지 혹은 그에 따른 호르몬의 변화인 건가. 아니면 깊숙이 숨어있던 우울감이 모습을 드러낸 건가. 요즘 부쩍 자주 찾아오는 허무함에 지쳐가고 있다. 아내와도 얘기해봤지만 아무래도 우울증의 초기 증상인 것 같다.
단우는 아마 핑계에 불과하고 아마 현재 마주하는 우울은 그 전부터 있었지만 보류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닐 거야. 단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서 그런 거겠지 하며 떠넘기기에 내게 너무 큰 책임감이 주어졌다.
거슬러 가보면 허무는 취직을 하고 한 1년 뒤부터 찾아왔다. 처음에는 하는 일이 너무 오래 맡아 지겨워져서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프로젝트를 바꾸면 그 새로운 일에 대한 흥분이 한 달 정도 지속됐다. 너무 답답하다 싶으면 휴가로 삶을 환기해 다음 몇 달을 견뎠다. 그것조차 약발이 떨어지면 아예 직장을 옮겨서 지겹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새로운 환경으로 나를 밀어 넣었다. 그러면 적어도 1~2년은 자유로웠다.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 길게 살 생각은 없다. 그래도 단우가 독립하는 그날까지 살기로 한 이상 건강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것도 중요하지만 정신적으로 건강해져야 한다.
정신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일환으로 듣기 시작한 팟캐스트이다. 첫 에피소드는 self-awareness를 주제로 ‘자각’이 왜 중요한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증대시킬 수 있는지를 다뤘다. 추천하는 방법은 저녁에 조용하게 15분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하루에 가장 감정적으로 동요했던 순간을 분석하고 비슷한 상황에서 자각을 통해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목적이다.
오늘 가장 감정적으로 동요했던 순간은 care.com의 상담원과 통화를 하던 순간이었다. 금요일 단우를 봐주는 nanny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봐주신 nanny로 바꾸는 과정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48의 cancellation fee가 부과된 것을 따지기 위한 전화였다.
$48의 cancellation fee가 부과됐을 때 이미 어느 정도 화가 나 있었다. 사전에 고지 없이 임의로 부과된 것은 잘못됐다고 느꼈고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해 따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는 범위 내의 감정적 반응이었다.
상담원과 첫 시작은 괜찮았다. 사정을 얘기했고 상담원도 나의 얘기를 전부 들은 뒤 상황을 알아보겠다고 했다.
미리 한 예약을 취소하고 새로 예약한 것이어서 policy 상 환불은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달했을 때 나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물론 이때도 상담원은 공감하고 이해해 주려는 입장이었다.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실망이 분노로 바뀌어서 같은 말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억울하니 환불해달라는 답정너로 변했다.
화를 가라앉히고 매니저와 통화하고 싶다고 얘기했지만 이 또한 거절당했다. 아마 이 때가 가장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내 입장에서는 이미 상담원은 골치 아픈 일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라고 머릿 속으로 답을 내렸다. 이기적인 처사에 나의 화는 머리 끝까지 났다.
전화를 끊고도 한 30분 가량을 찾아보고 이메일을 통해 다시 연락했다. 물론 큰 승산은 없다. 감정이 가라앉기 까지는 대략 한 시간정도 걸린 것 같다.
돌아보면
$48이 작은 돈은 아니지만 나의 시간과 정신적 스트레스와 맞바꿀만큼 가치가 크지는 않다.
나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같은 얘기를 반복하면 떼를 쓰기 시작한다. 떼를 쓰는 것은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화가 올라온 순간은 이미 막다른 곳에 도달했다는 의미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화를 내고 두드려봤자 상대방의 감정과 나의 감정만 상할 뿐이다.
화는 일종에 막다른 상황에 도달했다는 반증이며 화를 분출하는 것은 상대방 뿐만 아니라 나도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앞으로 당분간 쓰게 될 글들은 이 self-awareness를 증진하기 위한 하루 회고로 채우게 될 것 같다. 띠끌모아 태산. 방망이 깍던 노인.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부디 작심삼일에 끝나는 글들이 되지 않기를.